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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6.25 [21:02]
유관순 열사가 3.1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떠오른 역사적 배경
 
신상구

 

유관순(柳寬順, 1902-1920) 열사는 국어와 역사 교과서에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로 소개되어 있고, 해마다 31일이 돌아오면 언론에서 유관순 열사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     © 편집부


 

한국의 잔다르크로 불리우는 유관순 열사 근영

 

한편 해외에서도 유관순 열사를 기리는 여러 가지 행사를 하고 있다. 뉴욕타임즈(NYT)20183월부터 '우리가 간과한 사람들(Overlooked)'이라는 기획을 통해 유관순 열사의 출생과 성장 과정, 고향인 충남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한 업적 등을 상세하게 소개하면서 "3·1운동은 즉각적으로 한국의 독립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민족 단결 의식을 공고히 하고 일제에 대한 저항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지난 2019231(현지 시각) 뉴욕한인회에 따르면, 미국 뉴욕주에서는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3·1운동을 기리기 위해 유관순(1902~1920) 열사를 기리는 추모의 날이 제정될 전망이다.

그래서 그런지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 조사 결과 3.1운동하면 연상되는 첫 번째 인물로 유관순 열사로 나타났다. 그 다음 김구, 안중근, 손병희, 한용훈, 윤봉길 순서로 나타났다. 그리고 유관순 열사의 고향인 천안시와 충청남도가 중심이 되어 유관순 열사의 서훈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등급에서 1등급으로 격상될 수 있도록 100만 서명운동을 펼치고 국민청원 참여를 독려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우렸다.

그리하여 유관순 열사의 서훈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등급에서 1등급으로 격상되어 201931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된 3.1운동 100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유관순 열사의 조카 유장부씨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그런데 191941일 유관순 열사와 함께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이백하, 김구응, 유중무, 조인원, 김상헌, 박병호, 박상규, 박영학, 박유복, 박준규, 방치성, 서병순, 신을우, 유중권, 유중오, 윤태영, 윤희천, 이성하, 이소제, 전치관, 최정철, 한상필 선생 등이 유관순 열사의 빛에 가려 점차 잊혀지고 있어 요즈음 언론에서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2014년 선보인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 가운데 4종이 유관순을 다루지 않고 있어 국사교육의 문제점으로 떠오른 적이 있다. 최근 춘천교대 김정인 교수는 그 이유에 대해 이화학당 졸업생으로 친일 전력이 있는 박인덕이 발굴해 영웅으로 만들었다는 연구 성과가 있어 교과서에 기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미군정청 문교부 편수사로 1945년 광복 직후부터 3년 동안 초등학교 국어교과서를 제작했던 박창해(朴昌海, 1916-2010)가 타계 하기 직전인 2006년에 한 학술잡지에 나의 국어 편수사 시절이라는 회고의 글을 남겼다. 그는 이 글에서 유관순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1946년 어느 날 교과서에 들어갈 내용을 논의하다가 3·1운동 때 우리 여성 가운데 프랑스의 잔 다르크처럼 활동한 사람을 찾아내기로 했다. 그와 함께 교과서를 만들던 사람은 소설가 전영택이었다. 박창해는 이화학당의 여학생들이 3·1운동 때 맹활약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터라 이화여고를 찾아갔다. 그는 신봉조 이화여고 교장을 만났고, 신 교장은 당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준비했던 사람이 최명학 교감이니 그분에게 물어보라고 알려줬다. 하지만 최 교감은 이화학당 학생 200여 명이 3·1운동에 참여했으므로 누굴 내세워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창해가 이 사실을 교과서 제작진에 알린 며칠 뒤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유제한이 찾아왔다. 유관순의 조카였다. 유제한은 집안에 3·1운동으로 옥살이한 이화학당 학생이 있다고 전했다. 전영택은 이후 유관순 스토리를 교재로 만들어 배포했다는 것이다.”

이 증언에 따르면 유관순을 널리 알린 주인공은 박인덕이 아니라 소설가인 늘봄 전영택, 국어학자인 박창해, 유관순의 조카 유제한 편수사이다.

한편 유관순기념사업회에 참여한 김구, 이시영 등 독립운동가들도 유관순 열사를 영웅으로 만드는 데에 일정한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무엇보다 유관순 열사의 목숨을 건 순국투쟁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기 때문에 유관순 열사는 영웅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1948105일 한국 최초의 국어 교과서인 초등 국어1-1’ 교과서를 편찬한 박창해朴昌海(1916-2010)1916년 만주 지린성(吉林省) 룽징(龍井)의 넉넉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당시 길림성 용정은 민족의식이 강한 기독교 세력이 뿌리를 내려 윤동주, 문익환 같은 이들을 낳은 곳이기도 하다. 박창해는 어릴 적에 강아지를 동생처럼 키웠고, 온 식구가 두레반상에 빙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할아버지 등에 올라타 말 타기를 하고, 아버지와 숨바꼭질도 하며, 동네에서 일본, 러시아, 중국, 동무들과 어울려 놀았다. 그리하여 그는 여느 한국인들과는 달리 일제 식민지 아래에서도 식민지 의식이 거의 없이 자랐다. 박창해는 연세대학교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들어가 외솔 최현배 선생을 만나 드물게 우리 정수인 한글 정신을 몸에 익혀 우리 얼을 품을 수 있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미군정청 문교부 편수사로 뽑혀 한국 최초의 교과서 집필을 이끌었다. 박창해가 이끌어 펴낸 한국 최초 국어교과서는 가갸거겨따위 자모음 모양과 이름순으로 글씨만 배우던 그때까지 방식을 탈피하고 바둑아, 바둑아 나하고 놀자.”처럼 소리와 글씨, 낱말을 한꺼번에 아울러 가르쳐 놀라운 혁신을 이뤘다. 특히 박창해는 첫 단원에서 끝 단원까지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 전개 방식을 펼쳐 교과서를 만들었다. 60여 년 전에 박창해는 이미 스토리텔러였다. 뿐만 아니라 당시 국어교과서는 문화바로미터로 식민지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은 한국 사회 말과 글 그리고 생각 프레임을 결정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후 1952년에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부임한 박창해는 1959년 연세대 산하기관으로 한국어학당을 세운 뒤, 초대 학감을 맡아 외국인 한국어교육에 힘을 쏟았다. 환갑이 되던 1976년 연세대를 떠나 미국 하와이 대학에 가서 한국어를 가르치다가 열두 해 만인 1988년 다시 돌아와 일흔이 훌쩍 넘긴 나이에도 <한국어 구조론>, <현대 한국어 통어론 연구>, <한국어 집중 강습(An Intensive Course in Korea)>를 펴내며 노익장을 과시하다가 2010614일 향년 9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유관순 열사 전기를 최초로 저술한 늘봄 전영택(田榮澤)1894년 평양에서 출생했다. 그는 아오야마가쿠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1919<창조> 동인으로 활동했다. 그후 그는 서울감리교신학대학 교수, 아현교회 목사, 기독신문 주간, 조선민주당 창건, 북한 문교부 부장, 중앙신학교 교수, 문교부 편수국 편수관, 재일본 동경한국복음신문 주간, 기독선교회 편집국 국장,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역임하고 1968에 교통사고로 타계했다. 대표작으로는 <순국처녀 유관순전>(1948), <화수분>(1995) 등이 있다.

신상구



기사입력: 2019/03/04 [11:50]  최종편집: ⓒ 천안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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