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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4.06.17 [15:09]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생애와 업적과 기념행사
 
편집부

문무(文武)를 겸했던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은 인종 1년인 1545428(음력 38) 한성부 건천동에서 이정(李貞)과 초계변씨(草溪卞氏)와의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 편집부  충무공 이순신 장군 영정

 

 

장군은 어릴 때부터 무인의 자질을 보였지만 31세 때인 1576(선조 9) 2월에야 식년시 무과에 병과로 급제해 관직에 나섰다. 사복시 주부(6), 조산보 만호, 녹둔도 둔전관 겸임, 감사 이광의 군관, 진도군수를 거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됐다. 전라좌수영으로 부임한 이순신 장군은 전함을 건조하고 군비를 확충하며 왜군의 침략에 대비했다.

이순신 장군은 1592413일 일본의 침략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해전, 적진포해전. 사천해전, 1차 당포해전, 한산도대첩, 안골포해전 등에 참여해 승리함으로써 남해안의 해상권을 장악했다.

 

그러자 선조는 15939월 이순신 장군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했다. 그 후 이순신 장군은 제2차 당항포해전, 장문포해전에서 이겨 큰 전공을 세웠으나 원균(元均, 1540~1597)의 모함으로 한양으로 끌려가 혹독한 문초를 받았고, 권율(權慄, 1537~1599)의 진영에서 백의종군했다. 그런데 원균이 15978월에 칠천량해전에서 왜군에 대패하여 전라수사 이억기(李億祺, 1561~1597), 충청수사 최호(崔湖, 536~1597) 등과 함께 전사하면서 이순신 장군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됐다.

이순신 장군은 남아 있는 전선을 수습해 붕괴된 조선 수군을 재건했으며 1025일 진도 울돌목 명랑해전에서 13척의 배로 130여척의 왜군에 맞서 기적의 대승을 거두었다. 이 승리로 조선 수군은 제해권을 다시 장악했다.

 

15989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가 죽자 일본 해군은 철수를 하기 시작했다. 이순신 장군은 1216일 명나라 제독 진린(陳璘, 1543~1607)과 연합해 노량에서 500여척의 왜군과 싸워 200여척의 적선을 불태우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이순신 장군은 도주하던 적선을 추격하다가 유탄에 맞아 선조 31년인 15981119일 전사했다.

 

성웅 이순신 장군은 수많은 역경과 난관을 치열한 고뇌와 노력으로 돌파해 역사상 유례가 없는 2323승의 놀랄만한 전과를 올려 한국에서는 을지문덕(乙支文德), 연개소문(淵蓋蘇文), 강감찬(姜邯贊) 등과 함께 불세출의 구국의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다.

영국의 일본전문 역사학자인 스티븐 턴불(Stephen Turnbul, 1948)은 이순신 장군을 다음과 같이 높이 평가했다.

 

이순신 장군은 한국의 영웅이자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해군지휘관 중 한명이다. 이순신 해군제독의 승리들은 일본군의 패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판명됐다.”

·일전쟁(1904-1905)을 승리로 이끈 명제독 도고헤이하치로((東卿平八郞, 1848~1934)도 이순신 장군을 다음과 같이 높이 평가했다.

 

"영국의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1758~1805) 제독은 군신(軍神)이 될 수 없다. 해군 역사에서 군신(軍神)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이순신 장군 한 사람 뿐이다. 이순신 장군과 비교하면 나는 일개 부사관도 못 된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살신성인해 조국을 구한 구국의 영웅으로 한국사는 물론 세계 해전사에 찬란하게 길이 빛나고 있다.

 

이순신 장군 리더십의 뿌리는 사랑과 정성 · 정의와 자력 4가지인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에 대한 사랑 즉 애민(愛民)이다. 그리고 이순신 리더십의 뿌리를 만든 것은 수양이다.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의 증언에 의하면 이순신은 지혜를 내고 일을 지휘함에 한 가지 실수도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대제학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1647))의 증언에 의하면, ‘이순신은 용기를 분발하고 기회를 결단하기만 하면 그의 앞에는 강한 적이 없었다한다.

우리 후손들이 이순신 장군 탄신 478주년을 맞아 본받아야 할 것으로는 충효와 애민 정신, 뛰어난 리더쉽과 전략전술, 타고난 문장력과 창의력, 불굴의 투지와 인내력과 도전정신 등을 들 수 있다.

 

1795년에 문집인이충무공전서가 왕명으로 간행되었다. 현대에 와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서울의 중심인 세종로에 동상이 세워지고, 현충사가 대대적으로 정비됨으로써 이순신 장군은 한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인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2011428일에는 현충사 내에 충무공 이순신기념관이 개관돼 그의 혼이 담긴 주요 유물 40여점이 전시돼 있다.

 

이순신 장군의 진중일기인난중일기(亂中日記)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됐다.

해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인 428일을 전후해 아산에서는 성웅 이순신축제를 개최하고 있고, 서울 중구에서는 충무공 탄신 기념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이 당면하고 있는 안보위기, 인구절벽 위기, 저성장과 불평등 경제위기, 환경위기, 초갈등 사회 위기 등을 잘 극복하고 국민 모두가 골고루 행복하게 잘 사는 선진민주복지국가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특유의 유비무환과 도전의 뛰어난 리더쉽과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 주인의식을 갖고 책임을 지는 이순신 정신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2.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 478주년 기념 축제와 동상 친수식 개최

충남 아산시는 매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인 428일을 전후하여 충무공의 애국애족 정신을 고취하고 국난극복의 위엄을 계승하고자 아산성웅이순신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 편집부

 

 

1961년 제1회 온양문화제로 시작되어 지난 60여 년간 아산의 역사를 함께 해왔으며, 이순신 장군을 테마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공연 등 각종 문화행사를 통해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배우고 되새기며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어우러지는 참여형 문화관광축제이다.

 

한편 성웅 이순신 장군 탄신 주간을 선포한 충남 아산시가 지난 42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경귀 아산시장과 오세훈 서울시장, 김정호 서울 중구 부구청장과 이종학 덕수이씨 충무공파 종친회장 등이 참여한 가운데에 충무공 동상 친수식을 거행했다.

  © 편집부  박경귀 아산시장(오른쪽)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2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이순신장군

동상을 씻기고 있다. /제공=아산시

 

친수식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 제478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아산 현충사 경내 우물물을 길어와 동상을 씻는 행사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친수식에 앞서 인사말을 통해 "이순신 장군께서는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 투지와 인내력, 애민 정신의 상징"이라면서 "서울시도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본받아 꾸준히 소외된 이웃을 살피고 시민의 삶을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광화문광장은 분수와 표지석 곳곳에 12척의 배, 2323승 등 이순신 장군을 상징하는 의미가 담겨있는 곳"이라면서 "매년 의미 있는 친수식을 정성스럽게 준비해주시는 아산시에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충무공의 정신을 계승하는 친수식의 전통이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경귀 아산시장은 "대한민국의 심장부에서 우리 민족에게 두려움을 이겨내고 나라를 지켜내는 용기와 결기, 국가를 위한 헌신을 알려주고 계신 장군께 발전된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야말로 진심으로 충무공을 선양하고 기리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어 "장군의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친수식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게 돼 기쁘고 영광스러운 마음이 든다"면서 "친수식은 매년 이순신 장군 탄신일에 맞춰 열리는 성웅 이순신 축제의 개막을 알리는 행사이기도 한 만큼 428일부터 아산에서 열리는 제62회 성웅 이순신 축제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